만들 수 있다고, 만들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AI 시대, 교회는 유행을 따라야 하는가?
AI를 통해 이제는 거의 모든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영상과 음악을 재구성하고, 유명한 장면을 패러디하며, 유행하는 챌린지를 누구나 손쉽게 재현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놀랍다. 과거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던 작업들이 이제는 몇 번의 명령만으로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 앞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만들어도 된다는 의미일까?"
저작권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
AI로 기존 콘텐츠를 재해석하거나 유명한 영상을 패러디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제는 저작권이다.
물론 저작권은 중요하다. 원작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허락이 필요한 부분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적인 책임이다.
그러나 목회적 관점에서 보면 법적인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원작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 콘텐츠가 만들어진 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교회가 사용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메시지로 받아들일 것인가?
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해서 반드시 교회에 적합한 콘텐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상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 어떤 챌린지는 큰 관심을 끌어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 교회도 이런 걸 하는구나."
이 말은 긍정적인 반응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평가가 될 수도 있다.
관심을 얻는 것과 신뢰를 얻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세상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교회는 세상과 단절된 공동체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과 소통하는 것과 세상의 유행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 9:22)
바울이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사람들의 관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을 얻기 위한 복음의 목적이었다.
오늘날 교회가 유행하는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복음을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통로라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조회수를 높이거나 주목받기 위한 것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야 한다.
교회의 목적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데 있지 않다. 그 시선 너머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 있다.
관심을 끄는 교회보다, 사람을 품는 교회
우리는 종종 교회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홍보하고, 영상을 만들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이러한 노력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찾아온 사람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누구든지 오십시오."
이 말이 단순한 홍보 문구로 끝나지 않으려면 실제적인 환대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나그네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 성경이 반복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고아와 과부, 그리고 여러 형태의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교회가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별과 경계도 필요하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허용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모습이 화려한 콘텐츠나 유행에 민감한 감각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회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영상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그 메시지의 진실성은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AI가 편리해질수록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AI를 활용하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을 더욱 고민하게 된다.
이제는 영상을 제작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음악을 입히고, 장면을 바꾸고, 유명한 콘텐츠를 재해석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제작이 쉬워졌다고 해서 그 콘텐츠에 담아야 할 책임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AI로 만든 결과물에도 많은 고민과 정성이 담길 수 있다. 문제는 AI 자체가 아니라, 너무 쉽게 만들어진다는 이유로 충분한 검토 없이 게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만드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 콘텐츠는 교회를 위한 것인가, 제작자의 만족을 위한 것인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생각하게 하는가, 그저 재미있는 교회라는 인상만 남기는가?
원작의 의미를 존중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가 지켜야 할 가치와 정체성에 부합하는가?
이 질문 없이 기술의 가능성만 따라간다면, 교회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소비하는 문화 속에 갇힐 수 있다.
AI 시대에 아날로그 영성을 생각하는 이유
어쩌면 AI 시대에 우리가 아날로그 영성을 더욱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빠르게 만들어지는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오랜 시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더 소중해진다.
화려한 영상이 넘쳐날수록 조용히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일이 더 깊은 울림을 준다.
AI가 수많은 메시지를 만들어 줄 수 있어도,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함께 울고 기도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기술은 사역의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그 기술 자체가 사랑과 섬김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교회는 시대의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시대의 속도와 가치관까지 무조건 따라갈 필요는 없다.

결국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
유행하는 챌린지를 교회에서 활용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일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좋은 소통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다만 그 영상을 만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 영상은 사람들에게 교회를 보여주려는 것인가, 아니면 교회가 전해야 할 복음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관심을 얻는 것은 순간이지만, 신뢰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AI는 우리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무엇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우리의 책임이다.
교회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세상을 따라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복음의 가치를 드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AI 시대에 목회자가 기술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결국 교회의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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