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움직이지 않으시는가
이사야 40장이 지친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기다리는 소망’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하나님이 계신지 의심되는 순간보다 더 어려운 순간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믿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있으신 것도 압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지금 움직이지 않으시는가?”
기도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믿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사야 40장 27절의 이스라엘도 비슷했습니다.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말은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다”는 탄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더 깊은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 왜 우리가 생각한 방식대로 일하지 않으십니까?”
“왜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해결하지 않으십니까?”
결국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보다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존재보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의심한다
이스라엘의 눈앞에는 바벨론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제국이 역사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힘을 잃었고 현실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권리가 하나님의 계획에서 밀려난 것처럼 느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때,
사역의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가정의 문제가 계속될 때,
교회가 생각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의 마음속 질문은 이것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왜 제가 생각한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으십니까?”
신앙의 위기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아서 찾아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를 때도 찾아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보다 먼저 자신의 크기를 보여 주신다
이사야 40장 28절은 갑자기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왜 하나님은 곧바로 문제를 해결하시지 않고 자신이 어떤 분인지 말씀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은 한 시대를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대를 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이라는 현실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이전과 이후까지 보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몇십 년의 고통을 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역사의 시작과 끝을 보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단순히 산과 바다와 별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에 머물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제국도 그분 위에 있지 않습니다.
정치적 힘도 그분의 주권 밖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상황이 역사의 마지막 장면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말은 모든 일이 곧 좋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목회적으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니 곧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이 기대했던 속도와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결과가 즉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믿음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부재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과 하나님이 일하지 않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 40장 31절은 너무 익숙한 말씀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여기서 ‘앙망하다’는 말에는 기다림과 소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소망하면서 기다린다.”
혹은
“기다리면서도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적인 기다림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체념이 아닙니다.
“될 대로 되라”는 포기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내가 통제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께 말합니다.
“지금 해 주십시오.”
“이 방법으로 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때를 신뢰하라.”
“나의 방법을 따라오라.”
앙망은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술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입니다.
새 힘은 강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힘이 아니다
본문의 중심에는 인간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이 있습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은 강한 사람에게 상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지친 사람에게 힘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목표는 절대로 지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히려 우리가 지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청년도 피곤합니다.
장정도 넘어집니다.
목회자도 지칩니다.
부모도 지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지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치지 않는가?”
가 아니라
“나는 지쳤을 때 어디에서 다시 힘을 얻는가?”
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안에 힘이 충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지친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셨기 때문입니다.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 걷는 것이다
31절에는 세 가지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갑니다.
달려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걸어갑니다.
이것을 높은 신앙, 중간 신앙, 낮은 신앙의 단계로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세 장면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날에는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힘차게 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 대부분은 걷는 시간입니다.
눈에 띄는 기적도 없고,
엄청난 감동도 없고,
상황이 급격히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냅니다.
다시 기도합니다.
다시 예배합니다.
다시 가족을 사랑합니다.
다시 교회를 섬깁니다.
다시 한 걸음 내딛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상황이 모두 바뀌는 힘이 아니라,
상황이 아직 바뀌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힘입니다.
목회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목회자가 지친 성도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왜 믿음이 없습니까?”
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왜 더 강하게 믿지 못합니까?”
도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지치셨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기를 기대하고 계셨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부재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함께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말입니다.
이사야 40장의 중심은 앙망하는 인간의 위대함이 아닙니다.
앙망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기다림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분이 영원하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지치지 않으시며,
지친 사람에게 다시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바뀌기 전에 사람이 다시 걸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환경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40장은 더 깊은 은혜를 보여 줍니다.
환경이 아직 바뀌지 않았는데 사람이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아직 남아 있는데도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답을 다 얻지 못했는데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앙망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쩌면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시간에 움직여 주십시오.”
에서
“하나님,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해 주십시오.”
로 말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오늘 내게 주어진 길을 다시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갈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40장 #하나님의시간 #앙망 #새힘 #기다리는소망 #목회인사이트 #지친성도 #하나님의주권

